[오디세이아] 우리들의 '칼립소의 섬'은 무엇인가?

우리를 주저앉히는 것은 닥쳐오는 고날일까요? 아니면 벗어나기 힘든 달콤한 안락함일까요? 고전 <<오디세이아>>를 읽으며 어쩌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안전한 칼립소의 섬에서 무려 7년간 매일 해변을 서성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오디세우스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주어진 달콤한 지원 정책이 매우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안락함이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작품의 <<오디세우스>>를 보고 밀리의 서재를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해당 책이 전자책으로 있었고, 고전이지만 번역 덕인지 짜임이 좋았기 때문인지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디세이아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10년간의 전쟁을 끝으로 고향 이타카 섬으로의 귀향길에 신의 노여움을 사 또 10년간 지중해를 방랑하게 되는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12번의 시련 속에서 괴물과 싸우며 죽음의 위업을 기지로 돌파했지만 님프 칼립소를 만나 7년이라는 가장 긴 시간을 지체하게 됩니다. 가장 오랜 시간을 지체하게 된 이유는 고통도 위험도 아닌 안락함이었습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인간의 음식이 아닌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매일 대접했습니다. 또 잠자리는 헤르메스 신조차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동굴 궁전을 제공했습니다. 동시에 현실의 모든 고통과 책임,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떠나 있는 시간 동안 이타카 섬의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또 다른 전쟁, 실패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상 낙원을 제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역설적이게도 '인간다움'을 선택했습니다. 칼립소가 제공한 것들은 인간 오디세우스로서의 정체성과 도전, 성취를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기착지(지명 / 위치) 사건 요약체류 기간 비고
| 1 | 트로이 (Troy) | 10년 트로이 전쟁 승리 후 12척의 선단을 이끌고 고향 이타카로 출항함 | 출발점 (0일) | 귀향의 시작 |
| 2 | 이스마로스 (Ismarus) | 키코네스족을 약탈했으나 방심한 틈에 기습당해 선원 72명을 잃고 퇴각함 | 약 2~3일 | 첫 번째 비극 |
| 3 | 로토파고이의 섬 (Lotus-Eaters) | 고향을 잊게 만드는 마법의 열매(로토스)에 취한 선원들을 결박해 탈출함 | 약 2일 | 망각의 유혹 |
| 4 | 퀴클롭스의 섬 (Cyclopes) |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탈출했으나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음 | 약 3일 | 포세이돈의 분노 |
| 5 | 아이올리아 섬 (Aeolia) | 바람의 신에게 역풍 자루를 받았으나 선원들의 실수로 열려 이타카 목전에서 표류함 | 약 1개월 | 의심과 좌절 |
| 6 | 라이스트뤼고네스 (Laestrygonians) | 식인 거인들의 바위 투척 기습으로 오디세우스 배 1척을 제외한 함대 11척 전멸 | 1일 미만 | 선단 괴멸 |
| 7 | 아이아이에 섬 (Aiaia - 키르케) | 돼지가 된 선원들을 구하고 마녀 키르케의 연인이 되어 환대와 조언을 받음 | 약 1년 | 1년의 안식 |
| 8 | 하데스의 저승 (Underworld) | 망령을 소환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어머니를 만나 무사 귀환의 조건을 전해 들음 | 약 1~2일 | 명계 방문 |
| 9 | 세이렌의 바다 (Sea of Sirens) | 선원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묶인 채 치명적인 유혹의 노래를 견딤 | 반나절 (항해) | 유혹 극복 |
| 10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Messina) | 대소용돌이를 피하려다 6개 머리를 가진 괴물 스킬라에게 부하 6명을 잃음 | 반나절 (항해) | 비통한 희생 |
| 11 | 트리나키아 섬 (Thrinacia) | 굶주린 부하들이 태양신의 소를 잡아먹어 제우스의 벼락으로 배 완파 및 전원 사망 | 약 1개월 | 홀로 생존 |
| 12 | 오기기아 섬 (Ogygia - 칼립소) | 님프 칼립소에게 억류되어 불로불사를 제안받으나 7년간 매일 고향을 그리며 오열함 | 약 7년 (최장 체류) | 전체 여정의 70% |
| 13 | 스케리아 섬 (Scheria - 파이아케스) | 난파 후 나우시카 공주의 도움으로 궁전에서 10년의 방랑을 노래하고 배를 지원받음 | 약 3~4일 | 마지막 구원 |
| 14 | 이타카 (Ithaca - 고향 도착) | 20년 만에 거지로 변장해 귀환, 텔레마코스와 함께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왕위 수복 | 종착지 (정착) | 위대한 귀환 |
사회 제도와 덫
저는 복지 제도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우리의 발목을 잡는 덫이 과연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구직급여)의 반복적인 수급과 구직을 미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제도는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해 생기는 생계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출범했을 것입니다. 제가 정치, 사회 제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해당 실업급여와 같은 제도가 사회에 꼭 필요한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직업 훈련을 할 기회와 시간, 비용을 나라에서 대신 지불하고 구직자는 자기의 역량에 맞는 적절한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죠.
하지만 실업급여 하한액이 최저임금 실수령액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우가 분명 존재하며 "일을 하는 것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더 쉽고 이득이 되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기간 동안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하지 않게 된다면 경력 단절이나 공백기가 장기화되고 업무 현장에서의 적응 기간도 필요해집니다. 특히 청년층은 골든타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삶의 가치관은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단순히 먹고사는 것을 넘어 또 다른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고통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실업 급여는 다음 항해를 준비하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야지 영원히 머무는 종착지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변 사례
지인 중에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 한 번도 제대로된 직장을 가진 적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건설장비를 몇 개 소유하고 있으시고, 생활이 넉넉하진 않지만 자녀의 생활비를 대는 것에는 무리가 없으십니다. 30대 중반의 자녀는 매달 생활비를 받으며 취업준비라는 핑계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의 지갑이 칼립소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그분이 가진것이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더라도 똑같이 생활했을까요? 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최근 자발적 퇴사자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논의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열심히 살고 있는 구직 중인 청년은 소외하고, 사회 제도에 기대려는 사람에게만 손을 내미는 제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주변의 칼립소는 무엇이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