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블로그를 시작하는가 — 사이 no.01
왜 이 블로그를
시작하는가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보의 문제였다.
몇 달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같은 회사, 같은 직군,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인데도 일하는 속도와 결과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역량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른 게 있었다. 어떤 사람은 AI 에이전트를 도구가 아니라 동료처럼 부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챗봇에게 질문 하나 던지고 답을 복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보의 문제였다.
01두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실상 두 개의 다른 세계에 속해 있다. 한쪽에는 AI 에이전트가 코드를 작성하고, 리서치를 수행하고, 파일을 정리하고, 반복 업무를 통째로 가져가는 걸 매일 목격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AI는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재구성하는 인프라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여전히 AI를 검색엔진의 약간 똑똑한 버전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둘 다 똑같이 성실하고, 똑같이 똑똑하다. 다만 후자는 도구의 진짜 형태를 본 적이 없을 뿐이다.
이 격차가 무서운 이유는 천천히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한 번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그 사람의 생산성 곡선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꺾인다. 반나절짜리 작업을 십 분 만에 끝내는 사람과,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해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산술적으로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다. 그리고 이 차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결과물만 보면 둘 다 비슷한 품질의 일을 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 안에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의 차이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02정보 격차는 원래도 있었다, 다만 이번엔 속도가 다르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과 늦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격차는 항상 존재했다. 인터넷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고, 클라우드가 그랬다. 그런데 이번 변화는 과거의 패턴과 결이 다르다고 느낀다. 이전의 기술 격차는 보통 적응 기간이 길었다. 새 도구를 배우고, 익숙해지고, 업무에 녹이기까지 몇 년 단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뒤처진 사람도 따라잡을 여유가 있었다.
AI 에이전트는 그 적응 곡선 자체를 압축해버렸다. 도구가 매주 갱신되고, 어제 통하지 않던 방법이 오늘은 기본 기능이 되어 있다. 따라잡을 여유를 주지 않는 속도로 도구 자체가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 번 뒤처지기 시작하면, 단순히 시차만큼 뒤처지는 게 아니라 그 시차가 계속 누적된다. 이건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변화의 한가운데서 매일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있고, 누군가는 그런 시도 자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하루를 보낸다.
03알리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의 한계
이런 격차를 자각한 순간,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일종의 책임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우연히 먼저 접하고 익히게 된 것들을, 누군가는 접할 기회조차 없어서 모른 채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정보의 비대칭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알게 된 유용한 것들을 그냥 혼자 갖고 있기가 아까웠다는 마음이었다.
다만 이 마음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다.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AI 업계의 내부자도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도구를 써보고, 시행착오를 겪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평범한 사용자일 뿐이다. 그래서 이 블로그가 어떤 거대한 통찰이나 예측을 담는 공간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써보고, 무엇이 유용했고, 무엇이 기대에 못 미쳤는지를 솔직하게 기록하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거창한 전망보다 구체적인 경험이 더 오래 쓸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04왜 매일이 아니라 매주인가
처음엔 매일 글을 써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게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인정했다. 매일 쓰는 글은 양으로 승부하게 되고, 결국 깊이를 포기하게 된다.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건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정보가 아니라, 한 주 동안 직접 써보고 부딪혀보고 정리한 것들을 충분히 숙성시킨 다음 내놓는 글이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편이라는 속도를 택했다. 느리게 가더라도 끝까지 가고 싶었다.
이 블로그의 이름이기도 한 '사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비롯됐다. 입력과 출력 사이, 알게 된 것과 아직 모르는 것 사이, 빠르게 변하는 기술과 그것을 따라가려는 한 사람의 일상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매주 한 편씩, 개발과 독서와 일상을 오가며 기록을 남기려 한다. 거대한 답을 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이 격차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알아차리는 데, 이 기록이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다.